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은 단순하다. “첫째, 돈을 잃지 마라. 둘째, 첫 번째 원칙을 잊지 마라.”
물론 버핏도 투자 과정에서 평가손실을 경험한다. 여기서 잃지 말라는 말은 주가가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지 말라는 의미에 가깝다.
큰돈을 운용하는 연기금과 글로벌 투자기관이 포트폴리오와 리밸런싱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포트폴리오는 종목 모음이 아니다
포트폴리오 투자는 여러 종목을 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내주식, 해외주식, 채권, 현금, 대체투자 등에 목표 비중을 정하고, 특정 시장이 무너지더라도 전체 자산이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주식 50%, 채권 40%, 현금 10%로 시작한 포트폴리오에서 주식만 크게 오르면 주식 비중이 60~70%까지 높아질 수 있다.
돈은 벌었지만 처음보다 위험한 포트폴리오가 된 것이다.
이때 오른 주식을 일부 팔고 채권과 현금을 늘려 원래 비중에 가깝게 되돌리는 작업이 리밸런싱이다. 전망이 나빠서 파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올라 위험이 커졌기 때문에 파는 것이다.
- 연기금은 왜 오르는 국장에서 팔았을까
국민연금은 국내주식만 보유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내외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에 자금을 나눠 운용하며 자산별 목표 비중을 관리한다.
국민연금은 2026년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높였다. 그럼에도 코스피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보유 중인 국내주식의 가치가 불어나자, 실제 비중이 목표 범위를 넘어섰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기업의 전망이 나빠지지 않았더라도 포트폴리오 규칙에 따라 주식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 연기금은 4월 마지막 주부터 7월 첫째 주까지 코스피에서 약 4조8,800억원을 순매도했다.
전략적 자산배분(SAA):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 자산별 장기 목표 비중과 허용 범위를 미리 정해 운용하는 방식.
국민연금의 매도는 한국 증시를 버렸다는 선언이라기보다, 급등으로 지나치게 커진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는 위험 관리에 가까웠다.
- 외국인도 한국이 싫어서만 판 것은 아니다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역시 같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펀드가 한국 주식을 전체 자산의 5%만 보유하기로 정했다고 가정해보자. 한국 증시와 반도체 주가가 다른 국가보다 훨씬 빠르게 오르면, 추가 매수를 하지 않아도 한국 비중은 7%나 8%로 커진다.
이때 펀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망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부를 팔 수 있다. 한국 비중을 다시 5%로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외국인 매도에는 차익 실현과 원화 약세,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도 함께 작용했다. 따라서 모든 외국인 매도를 리밸런싱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은행은 최근 외국인 자금 유출 과정에서 글로벌 펀드와 연기금의 자산배분 조정 및 차익 실현 유인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한국 증시가 너무 빠르게 오른 결과, 오히려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 리밸런싱은 하락장에서 반대로 작동한다
리밸런싱은 계속 팔기만 하는 전략이 아니다.
주가가 하락해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 범위 안으로 내려오면 연기금의 기계적인 매도 압력은 줄어든다. 주식 비중이 목표보다 낮아지면 오히려 주식을 다시 사야 할 수도 있다.
연기금은 10주 연속 순매도한 뒤 7월 둘째 주 순매수로 돌아섰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시장이 하락하자 리밸런싱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결국 리밸런싱은 상승을 예상해서 사고 하락을 예상해서 파는 시장 전망이 아니다. 많이 올라 비중이 커지면 팔고, 많이 내려 비중이 작아지면 사는 포트폴리오 관리 규칙이다.
- 큰돈은 수익률보다 생존을 먼저 관리한다
최근 국장에서 리밸런싱이라는 단어가 반복된 이유는 연기금과 외국인의 매도가 기업 가치보다 포트폴리오 비중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도 다르지 않다. 특정 종목이 크게 오르면 수익은 늘어나지만, 동시에 그 종목 하나가 전체 자산을 좌우하는 위험한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때 일부를 파는 것은 상승을 포기하는 행동이 아니다. 수익 일부를 지키고, 다음 기회에 다시 투자할 수 있는 생존력을 확보하는 행동이다.
잃지 않는 투자는 손실을 단 한 번도 보지 않는 투자가 아니다. 어떤 시장이 와도 한 번에 퇴장하지 않도록 비중을 관리하는 투자다.
최근 연기금과 외국인의 움직임이 보여준 결론도 같다.
시장을 예측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틀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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