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까지 한 주 동안 중동에서 실려 나간 석유는 하루 평균 2,400만 배럴이 넘었다. 2월 28일 전쟁이 시작되기 전 평균 2,330만 배럴보다 많다. 미국 당국이 해군 봉쇄로 완전히 끊겼다고 밝힌 이란 수출을 빼고도 그렇다. 그런데 10월 21일 오후 브렌트유(국제 원유 값의 기준이 되는 원유) 값은 배럴당 108.86달러였다.
흔한 해석은 “기름이 다시 잘 나오니 유가도 곧 내릴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유가에는 기름의 양만이 아니라, 그 기름을 위험한 바다 너머로 실어 오는 값과 경유 같은 연료로 만드는 정유 능력이 함께 걸려 있다. 양은 돌아왔지만 이 ‘배달 비용’은 아직 그대로다.
- 수출량은 어떻게 전쟁 전을 넘었나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페르시아만 입구의 좁은 바닷길로, 전쟁 전 세계 석유·LNG(액화천연가스)의 약 5분의 1이 지나던 곳)을 막으려 했다. 지금 해협을 지나는 석유는 오만만에서 옮겨 싣는 물량까지 합쳐 하루 약 1,400만 배럴로, 전쟁 전의 82%다.
모자란 몫은 다른 길이 메웠다. 9월에는 이란을 뺀 중동 원유의 약 40%가 사우디 동서 송유관 같은 우회로로 해협을 피해 나갔다. 전쟁 전엔 17%였다. 쉽게 말해 정문은 아직 덜 열렸는데, 옆문을 넓혀 전보다 많이 내보내고 있는 셈이다.
- 돌아가는 길은 왜 비싼가
해협을 건너는 원유도 예전처럼 한 번에 가지 않는다. 셔틀 유조선이 만 안에서 원유를 싣고 해협을 건넌 뒤, 아랍에미리트·오만 앞바다에서 먼 곳으로 가는 다른 배에 옮겨 싣는다. 오만 해안을 따라서는 미군이 보호한다. 8월에 해협을 건넌 원유의 70% 넘게 이렇게 배를 갈아탔다. 이란은 지나는 배를 계속 공격하고 있고, 최근 2주 동안 지역에서 선박 공격이 적어도 18건 기록됐다.
위험은 값으로 바뀐다. 1~2주 왕복에 선원에게 최대 2만 5,000달러 보너스를 준다는 보도가 나왔다. 위험이 유조선 값을 끌어올리면서 중동을 지나지 않는 배도 비싸졌다. 10월 초 미국 멕시코만 연안에서 중국으로 가는 초대형 유조선이 7,600만 달러에 빌려졌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1년도 안 된 때 비슷한 항해의 약 10배다. 원유 약 200만 배럴을 싣는 배라 원유 값과 별도로 배럴당 약 38달러가 운임으로 붙는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유조선도 7,700만 달러에 예약됐다.
같은 날 미국 원유(WTI) 값 97.17달러와 견주면, 운임 38달러는 원유 값의 약 39%다. 택배로 치면 물건 값은 그대로인데 배송비가 10배가 된 것과 비슷하다. 다만 택배와 달리 이 배송비는 정해진 요금이 아니라, 바닷길이 위험할수록 오르는 값이다.
- 경유 같은 정제유는 왜 아직 모자라나
원유가 돌아와도 차와 공장에 넣는 것은 정제유(원유를 정유 공장에서 처리해 만든 경유·휘발유 같은 연료)다. 9월 28일까지 7일 동안 호르무즈를 지난 정제유는 하루 평균 67만 7,000배럴로, 전쟁 전 360만 배럴의 5분의 1도 안 됐다.
정유 공장도 다쳤다. 중동 정유 공장 가동량은 2월 하루 990만 배럴에서 8월 730만 배럴로 줄었다. 공장 피해와 완제품 수출의 어려움 때문이고, 선박 추적 회사 크플러는 전쟁 전 수준 회복이 2027년 2분기 전에는 어렵다고 봤다.
밀가루는 다시 들어오는데 빵 공장이 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9월 말 미국 경유 값은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그래서 원유 값이 내리더라도 경유 같은 연료 값이 곧바로 따라 내리지는 않을 수 있다.
- 위험한 길을 건너는 쪽은 얼마나 버나
위험을 감수하고 실어 나르는 쪽에는 큰돈이 걸려 있다. 크플러 분석가 호마윤 팔락샤히는 이라크 원유를 되팔면 전쟁 전보다 배럴당 20달러를 더 벌 수 있고, 초대형 유조선 한 척 분량이면 약 4,000만 달러라고 추산했다.
파는 쪽도 운임을 신경 쓴다. 사우디 아람코(사우디 국영 석유회사)는 높은 운임을 메워 주려 일부 아시아 구매자에게 값을 깎아 주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 화면 속 유가와 실제로 사서 받는 값은 다르다
IBTimes는 수출이 늘었는데도 지역의 높은 긴장과, 위험 때문에 오른 운임이 유가를 높게 붙잡고 있다고 짚었다. 게다가 브렌트유 108.86달러는 금융시장 화면에 뜨는 기준 값일 뿐이다. 이렇게 비싼 항해는 실제 원유를 사서 실어 오는 값이 화면 속 기준 값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기준 값도 내려오지 않았다. 10월 1일 보도에선 브렌트유가 최근 1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는데, 10월 21일엔 109달러 가까이였다. 해협 주변의 긴장과 지역으로 번진 충돌이 값을 받치고, 미국과 이란의 외교 돌파구는 아직 멀다.
- 비트프레스 인사이트
“수출이 전쟁 전을 넘었다”는 숫자는 기름이 나오는 길이 전쟁 전으로 돌아갔다는 뜻이 아니다. 정문(호르무즈)은 82%만 열렸고, 나머지는 옆문(송유관)으로 메운 양이다. 해협을 건너는 길에는 옮겨 싣기·선원 보너스·공격 위험이 붙고, 지역 긴장과 함께 오른 운임이 유가를 받친다. 경유 같은 정제유는 정유 공장이 덜 돌아가 원유보다 더디게 회복하고 있어, 원유 값이 내려도 연료 값은 늦게 따라올 수 있다.
그래서 유가 뉴스를 볼 때 생산량이나 수출량만 보면 “이제 내리겠지”라는 판단이 틀리기 쉽다. 유가가 정말 내려갈지는 기름의 양보다, 실어 오는 배 값과 경유 같은 정제유 공급이 풀리는지로 판단하는 편이 맞다.
출처
https://www.ibtimes.com/more-oil-flowing-through-persian-gulf-before-war-prices-are-still-high-3808854
https://arabnews.com/middle-east/arab-gulf-oil-exports-surpass-pre-war-levels-despite-iranian-attacks-3007580
https://www.hellenicshippingnews.com/crude-oil-exports-through-the-strait-of-hormuz-hit-prewar-levels-but-fuel-shipments-remain-constrained/
https://www.ibtimes.co.uk/strait-hormuz-crude-flows-prewar-diesel-supplies-tight-1823015
용어 풀이
브렌트유 — 국제 원유 값의 기준으로 쓰이는 원유다.
호르무즈 해협 — 페르시아만과 바깥 바다를 잇는 좁은 바닷길로, 전쟁 전 세계 석유·LNG(액화천연가스)의 약 5분의 1이 지났다.
정제유 — 원유를 정유 공장에서 처리해 만든 경유·휘발유 같은 연료다.
셔틀 유조선 — 짧은 구간만 오가며 원유를 실어 나른 뒤 다른 배에 옮겨 싣는 유조선이다.
초대형 유조선 — 원유를 약 200만 배럴까지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가장 큰 급의 유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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