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첫째 주부터 10월 넷째 주까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8.91% 올랐다. 같은 기간 매매가격지수(8.73%)보다 높고, 지난해 같은 기간 전세 상승률(2.31%)의 3.9배다.
흔히는 전셋값이 해마다 조금씩 오르니 다음 계약도 비슷하게 오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계약갱신권을 이미 쓴 세입자에게는 다음 만기 때 인상 폭을 막아 주던 5% 상한이 더 이상 없다.
- 5% 상한은 왜 한 번만 세입자를 지켜 주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만기 6개월~2개월 전에 계약을 2년 더 연장하자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을 1회만 쓸 수 있게 했다. 갱신할 때 보증금은 기존 금액의 20분의 1, 곧 5%를 넘게 올릴 수 없다.
그래서 흐름은 이렇다. 첫 계약 2년 → 갱신권을 써서 2년 더, 인상은 5% 이내 → 4년째 만기에는 갱신권이 없으니 새 계약 → 집주인은 그때 시세대로 보증금을 부를 수 있다. 휴대폰 약정 할인처럼 생각하면 된다. 다만 약정은 기간이 끝나면 할인이 사라질 뿐이지만, 전세는 그동안 못 올린 시세가 한 번에 붙는다.
- 왜 내년 2~3월에 만기가 몰리나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까지는 역전세(새로 맺는 전셋값이 기존 보증금보다 낮아진 상황) 시기였다. 고금리로 집값과 전셋값이 함께 떨어지면서 서울 외곽에서는 직전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계약한 세입자가 적지 않았다.
이들이 2년 갱신을 거쳐 이제 만기를 맞는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갱신계약까지 소진한 임대차 계약 만료 수요가 내년 2~3월쯤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사철 성수기와 겹치는 시점이다.
- 갱신권이 있느냐 없느냐로 얼마가 달라지나
보증금 4억 원짜리 전세로 계산해 보자. 갱신권이 남은 세입자라면 집주인이 올릴 수 있는 돈은 최대 2,000만 원(5%)이다. 갱신권을 다 쓴 세입자의 집 시세가 작년과 올해 1~10월 서울 전세지수만큼(2.31%, 8.91%) 올랐다고 가정하면, 새 보증금은 약 4억 4,570만 원이 된다. 약 4,570만 원, 상한의 약 2.3배다(가정 계산).
쉽게 말해 같은 단지 같은 평수라도, 갱신권이 남았는지에 따라 다음 계약에서 마련할 돈이 두 배 넘게 벌어질 수 있다. 실제 거래도 이를 뒷받침한다. 같은 단지·같은 면적 기준 올해 신규 전세 보증금 중위값은 지난해보다 8.6% 올랐고, 성북구는 15.4%, 노원구는 14.0% 뛰었다. 갱신 때 5% 상한 때문에 시세만큼 못 올렸다면, 그 차이까지 이번 계약에서 한 번에 오른다.
- 왜 시세가 이렇게 뛰었나
전세로 나오는 집 자체가 줄었다. 11월 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1385건으로 1년 전보다 14.5% 적다. 파이낸셜뉴스 분석에 따르면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 차단, 대출 규제, 실거주 의무로 전세를 놓는 집이 줄었고, 세금 부담에 월세를 놓는 집주인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새 아파트도 적다. 올해 1~9월 서울 아파트 준공은 2만2768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5% 줄었다. 국토교통부는 2028년부터 준공이 늘 수 있다고 보지만, 착공부터 입주까지 2~3년 이상 걸려 내년 봄 만기에는 닿지 않는다.
- 못 맞추는 차액은 어디로 가나
일부는 월세로 돌리기도 한다. 남 연구원은 “보증금을 추가로 마련하기보다는 차액을 월세로 내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고 했다. 올해 1~9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지난해보다 26.9% 줄었지만 월세 거래는 1.5% 줄어드는 데 그쳤고, 새로 맺은 계약의 월세 비중은 57.5%다.
그 결과 월세도 오른다. 올해 1~9월 서울 아파트 월세 누적 상승률은 7.68%로, 지난해 연간 상승률(3.94%)의 두 배에 가깝다. 노원구는 12.88% 올랐고, 9월 중랑구는 전월세 계약의 85.0%가 월세였다.
- 비트프레스 인사이트
다음 전세 계약이 얼마나 오를지는 서울 평균 상승률보다 내 계약서의 갱신 이력이 더 많이 정한다. 갱신권이 남아 있으면 인상은 5% 안에서 멈추지만, 이미 썼다면 첫 계약 뒤 4년 동안 오른 시세가 5%만 반영된 채 쌓여 있다가 한 번에 붙는다.
그래서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라도 세입자마다 내년 봄 부담이 다르다. 갱신권을 쓴 세입자는 보증금을 더 구하거나, 대출을 늘리거나, 차액을 월세로 돌리는 셋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다만 갱신권이 남아 있어도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판단 기준은 하나다. 내 다음 인상 폭은 지금 보증금에 5%를 곱한 값이 아니라, 지금 같은 집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내는 보증금과 내 보증금의 차이다.
출처
https://www.law.go.kr/LSW/lsInfoP.do?lsiSeq=276291
https://www.fnnews.com/news/202611011856071100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110111160002385
https://www.fnnews.com/news/202611041814557957
용어 풀이
계약갱신요구권 — 세입자가 만기 6개월~2개월 전에 2년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한 번만 쓸 수 있고 이때 보증금 인상은 5% 이내다.
역전세 — 새로 맺는 전셋값이 기존 보증금보다 낮아진 상황으로, 2022년 하반기~2023년 고금리 때 나타났다.
전세가격지수 — 한국부동산원이 표본 아파트의 전셋값 변화를 매주 지수로 만든 것으로, 오른 폭을 %로 비교할 때 쓴다.
중위값 — 계약을 금액 순서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값이다.
갭투자 —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끼고 적은 돈으로 집을 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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