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가 토큰 주식을 허용해도 안 사는 이유, 투자자가 원한 건 레버리지였다
2026-09-22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미국 주식시장을 감독하는 기관)가 9월 17일 주식을 블록체인 위에서 사고팔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조건을 붙여 5년 동안만 허용하는 실험이다. 곧 코인처럼 미국 주식을 24시간 사고팔게 된다는 기대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같은 주에 나온 증권사 분석은 반대 그림을 보여준다. 이미 토큰으로도 거래되던 주식을 들여다보니 투자자는 토큰 쪽을 거의 사지 않았다. 허용이 돼도 왜 안 사는지를 알면, 이 시장에서 돈이 어디부터 움직일지도 보인다.


  1. 주식 토큰화는 같은 내용물을 새 포장에 담는 일이다

주식 토큰화는 주식을 블록체인 위의 디지털 증표, 즉 토큰으로 바꾸는 것이다. 비유하면 같은 내용물을 새 포장에 담는 일이다. 내용물인 주식은 그대로이고, 포장만 증권사 장부에서 블록체인으로 바뀐다.

이번에 SEC가 허용한 것도 정확히 이 포장이다. 토큰을 가진 사람은 원래 주주와 똑같이 배당을 받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주식 없이 가격만 따라가는 합성·파생형 토큰은 허용 대상에서 빠졌다.


  1. 같은 주식을 두 포장으로 팔았더니, 거의 전부 옛 포장을 샀다

이 실험을 먼저 해본 회사가 있다. 피겨 테크놀로지 솔루션스(블록체인으로 대출과 자금 거래를 처리하는 나스닥 상장사)는 일반 주식 FIGR과 블록체인 주식 FGRS를 나란히 거래되게 했다. 두 주식이 주는 경제적 권리와 의결권은 똑같다.

TD증권(캐나다 토론토도미니언은행 계열 투자은행)이 9월 18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 주식을 24시간 동안 들여다보니 거래 금액의 99.9%가 일반 주식에서 나왔다. 내용물이 같은데도 투자자는 거의 전부 익숙한 포장을 골랐다.

주식을 내는 회사들도 시큰둥하다. TD증권이 개인 고객이 많은 회사 여러 곳을 포함해 수십 개 상장사와 이야기해 봤지만, 피겨처럼 원래 코인과 가까운 회사 말고는 자기 주식을 토큰으로 만들겠다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1. 미국 투자자에게 새 포장은 더 나은 점이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 투자자는 이미 증권 계좌로 원래 주식을 쉽고 효율적으로 산다. 새 포장으로 갈아타려면 그 불편을 넘을 만큼 확실한 이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득보다 손해가 먼저 보인다. 토큰 주식은 사고파는 사람이 적다. 손님이 드문 가게에서는 원하는 값에 바로 팔기 어렵듯, 거래가 얇으면 불리한 가격에 체결되기 쉽다. 운영상 번거로움도 더 붙는다.

코인처럼 24시간 거래된다는 장점도 반만 맞다. TD증권은 밤새 열려 있다고 더 좋은 거래가 되는 것은 아니며, 거래가 얇으면 오히려 나쁜 가격이 나온다고 봤다. 그래서 개인도 기관도 당분간 크게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1. 코인 시장이 주식에서 원한 건 소유가 아니라 레버리지였다

그렇다면 코인 거래소에서 주식 가격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했을까.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코인거래소 바이낸스의 한 시점 자료에서 엔비디아 가격에 연결된 거래 금액의 96%가 퍼페추얼에서 나왔다.

퍼페추얼은 만기 없이 계속 굴리는 선물로, 주식을 갖지 않고 가격 오르내림에만 돈을 건다. 적은 돈으로 큰 금액을 움직이는 레버리지가 핵심이다. 포장 비유로 말하면 이들은 내용물을 사려던 게 아니라 가격표에 내기를 건 것이다. TD증권도 이런 상품이 계속 늘어날 이유로 개인투자자의 레버리지 수요를 꼽았다.

그런데 이번 허용은 정확히 이 부분을 비켜 갔다. 가격만 따라가는 파생형 토큰은 대상이 아니고, 허가받은 플랫폼은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줘 신용거래를 하게 할 수도 없다. 수요가 있는 곳과 허가가 난 곳이 서로 다르다.


  1. 개인 매매가 더딘 사이, 기관 쪽 배관이 먼저 바뀌고 있다

개인 매매가 더디다면 토큰 주식은 어디서 쓰일까. 주식을 토큰으로 만들어 파는 온도 파이낸스는 자격을 갖춘 기관이 이미 가진 주식과 ETF를 그대로 토큰으로 바꾸고, 다시 원래 주식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새로 현금을 넣지 않아도 되니 자금 조달 비용과 시차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사의 설명이다. 개인에게 새 상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기관이 이미 가진 자산을 토큰으로 옮기는 뒷단 배관을 바꾸는 일이다.


  1. 비트프레스 인사이트

포장만 바꾼 상품은 규제가 허락해도 팔리지 않는다. 투자자가 옮겨 가는 것은 원래 것이 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뿐이다. 토큰 주식이 미국 개인에게 새로 주는 것은 아직 없고, 사람들이 실제로 원한 레버리지는 이번 허용에서 빠졌다.

그래서 ‘미국이 주식 토큰화를 허용했다’는 뉴스를 개인 거래가 몰려온다는 뜻으로 읽으면 틀린다. 당분간 이 시장의 돈은 개인의 매매 화면이 아니라 기관의 뒷단 배관에서 먼저 움직인다.

토큰화 뉴스의 무게는 허가가 났느냐가 아니라, 원래 것보다 나은 점이 있느냐로 정해진다. 나은 점이 없는 토큰화는 거래 뉴스가 아니라 제도 뉴스다.


출처
https://www.sec.gov/newsroom/press-releases/2026-90-sec-issues-innovation-exemption-facilitate-trading-tokenized-nms-stock-request-comment
https://www.sullcrom.com/insights/memo/2026/September/SEC-Issues-Innovation-Exemption-for-Tokenized-Securities
https://www.coindesk.com/markets/2026/09/21/why-this-investment-bank-sees-little-demand-for-tokenized-stocks-despite-sec-s-new-trading-rules
https://www.sec.gov/Archives/edgar/data/2064124/000149315226001230/ex99-1.htm
https://www.tdsecurities.com/ca/en
https://cointelegraph.com/news/ondo-lets-institutions-convert-stocks-directly-into-tokenized-shares

용어 풀이
주식 토큰화 — 주식을 블록체인 위의 디지털 증표로 바꾸는 것으로, 내용물은 같고 포장만 바뀐다.
퍼페추얼 — 만기 없이 계속 굴리는 선물로, 주식을 갖지 않고 가격 오르내림에만 돈을 거는 계약이다.
레버리지 — 빌린 돈이나 증거금을 이용해 가진 돈보다 큰 금액을 움직이는 것으로, 이익도 손실도 커진다.
거래가 얇다 — 사고파는 사람이 적어 원하는 가격에 바로 사거나 팔기 어려운 상태다.
신용거래 — 거래소나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것으로, 레버리지를 쓰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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