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이 이달 말까지 선착순으로, 새로 돈을 넣는 고객에게 1년 만기 연 5.0% 이자를 주는 상품을 판다. 키움증권은 10월 8일 3개월 만기 세전(세금을 떼기 전) 연 5.80% 상품을 내놨다. 주요 시중은행 1년 정기예금 금리는 3%대다.
흔한 해석은 ‘증권사들의 고금리 특판 경쟁, 예금보다 낫다’이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이 상품은 ‘발행어음’이고, 은행 예금에 있는 예금자보호가 없다. 예금자보호는 금융회사가 망해도 예금보험공사가 1억 원까지 대신 돌려주는 제도다.
증권사가 내 돈을 자기 이름으로 빌린다 → 그 돈을 기업금융 등에 굴려 이자를 준다 → 증권사가 망하면 대신 갚아 줄 곳이 없다.
- 발행어음은 어떤 상품인가
발행어음은 자기자본(빚을 뺀 회사 자기 돈)이 4조 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만 낼 수 있는, 만기 1년 이내 상품이다. 9월 삼성증권이 인가를 받으면서 발행하는 증권사는 8곳이 됐다. 고객이 맡긴 돈을 증권사가 기업금융·부동산금융 등에 투자하고, 그 돈을 굴려 원금과 이자를 마련한다. 다만 굴린 결과와 상관없이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줄 책임은 증권사 자신에게 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은행 예금도 사실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다만 은행 예금은 은행이 못 갚으면 예금보험공사가 대신 갚고, 발행어음은 그런 보증인이 없다.
- 이자는 얼마나 더 주나
한국투자증권의 연 5.0%는 새로 돈을 넣는 고객 몫이고, 이미 계좌가 있는 고객은 1년 연 4.4%다. 삼성증권은 10월 12일 연 4.3% 1년 상품을 1,000억 원 한도로 내놓는다. 1차 판매 1,000억 원은 이틀 반 만에 다 팔렸다.
1,000만 원을 1년 맡긴다고 해 보자. 연 5.0%면 세전 이자 50만 원, 은행 예금이 연 3%라면 30만 원이다(가정 계산). 쉽게 말해, 1년에 20만 원을 더 받는 대신 보호를 내려놓는 셈이다.
- 왜 지금 이런 상품이 쏟아지나
연합뉴스는 주가 부진으로 증시의 돈이 안정적인 이자를 주는 은행으로 옮겨 가자, 증권사들이 이를 붙잡으려 높은 금리를 내건 것으로 풀이했다. 시장도 커졌다. 삼성증권 인가 전인 6월 말, 발행어음 사업자 7개사의 발행잔액은 55조 9,291억 원이었다. 사업자가 4곳이던 1년 전보다 26.0% 늘었는데, 사업자가 늘어난 영향도 들어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공모 회사채를 찍는 것보다 절차가 간단한 돈줄이다. 손님에게 1~2%p(퍼센트포인트) 더 높은 이자를 줘도, 그 돈을 기업금융 등에 굴려 그보다 더 벌어야 남는 구조다.
- 증권사가 망하면 내 돈은 어떻게 되나
예금자보호 한도는 2025년 9월 1일부터 금융기관별로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쳐 1억 원이다. 증권사(투자매매·투자중개업자)도 보호 대상 금융회사다. 그래서 증권사 계좌에 현금으로 그냥 남겨 둔 돈(예수금)은 보호 상품 목록에 들어 있다. 같은 증권사의 다른 보호 상품과 합쳐 1억 원까지다.
그런데 그 돈으로 발행어음을 사는 순간 보호 밖으로 나간다. 발행어음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증권사가 부도·파산하면 원금 일부 또는 전부를 잃을 수 있다. 같은 앱, 같은 계좌 안에서 버튼 하나로 운명이 갈리는 셈이다.
우산에 빗대면 쉽다. 은행 예금은 1억 원짜리 우산을 쓰고 걷는 것이고, 발행어음은 우산을 접고 걷는 것이다. 비가 안 오면 차이가 없지만, 비가 오면 다 맞는다.
- 실제로 보호 밖 돈을 잃은 적이 있나
2011년 2월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됐을 때, 당시 한도 5,000만 원을 넘긴 예금은 예금보험공사 보험금으로 받을 수 없었다. 넘긴 금액은 파산 절차에 참여해 배당률에 따라 일부만 돌려받을 수 있었다. 예금보험공사는 5,000만 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망하면 맨 나중에 갚는 빚) 투자자 등 피해자를 3만 8,000여 명으로 봤다(2020년 보도).
이번과 다른 점도 있다. 그때 예금은 5,000만 원까지는 지켜졌지만, 발행어음은 후순위채권처럼 첫 1원부터 보호 밖이다. 다만 발행 증권사는 자기자본 4조 원이 넘는 큰 회사이고, 부도·파산하지 않는 한 만기에 원금을 줄 책임이 있다.
- 비트프레스 인사이트
발행어음의 1~2%p 더 높은 이자는 공짜가 아니다. ‘이 증권사는 만기까지 망하지 않는다’에 내 원금을 거는 값이다. 증시를 떠나 안전한 곳을 찾던 돈이라면, 지금 옮기려는 곳이 생각만큼 안전한지부터 따져야 한다.
그렇다고 발행어음이 나쁜 상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예금과 같은 상품이라고 착각하고 넣는 것이다. 1년 상품 중 가장 높은 연 5.0%와 은행 예금 연 3%를 견줘도(가정 계산) 1,000만 원에 1년 20만 원을 더 받는 대신, 증권사가 쓰러지면 원금 1,000만 원이 걸린다.
판단 기준은 하나다. 이 돈을 잃으면 생활이 흔들리는 돈인지 먼저 묻는다. 그렇다면 이자를 덜 받더라도 예금자보호 안에 두고, 잃어도 버틸 수 있는 만큼만 이자를 더 주는 쪽에 둔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61009024400008
https://www.fsc.go.kr/edu/news/85077
https://www.bokjiro.go.kr/ssis-tbu/cms/pc/news/promotion/1308414_1118.html
https://securities.koreainvestment.com/mobile/item/_view/MMO50800.jsp
https://biz.sbs.co.kr/amp/article/20000336088
https://www.dailian.co.kr/news/view/1598768
https://core.asiae.co.kr/article/2026091321332855281
https://www.mt.co.kr/finance/2011/02/17/2011021714195396056
https://www.khan.co.kr/article/202002271811001
용어 풀이
발행어음 — 자기자본 4조 원 이상 대형 증권사가 자기 신용으로 고객 돈을 빌리며 내주는 만기 1년 이내 상품이다.
예금자보호 — 금융회사가 망해도 예금보험공사가 금융기관별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쳐 1억 원까지 대신 돌려주는 제도다.
예수금 — 증권사 계좌에 주식을 사지 않고 현금으로 남겨 둔 돈으로, 예금자보호 상품 목록에 들어 있다.
자기자본 — 회사 재산에서 빚을 뺀, 회사가 스스로 가진 돈이다.
특판 — 기간이나 금액 한도를 정해 평소보다 좋은 조건으로 파는 특별 판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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