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오픈AI(챗GPT를 만든 회사)의 최고경영자 샘 알트먼은 자기 블로그에 ‘세 가지 관찰’이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AGI(범용 인공지능, 사람처럼 여러 분야의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푸는 AI)가 경제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은 흔히 ‘AI가 모든 것을 싸게 만든다’는 낙관론으로 읽힌다. 하지만 19개월이 지난 지금 숫자를 대 보면, 투자자가 밑줄 쳐야 할 문장은 따로 있다. “많은 물건값은 크게 떨어지겠지만, 사치품과 땅처럼 본래 한정된 것의 값은 더 크게 오를 수 있다.”
- 알트먼이 말한 세 가지
첫째, AI의 똑똑함은 들인 자원(컴퓨터 계산량·데이터)의 ‘로그’를 따라간다. 자원을 10배 넣을 때마다 한 계단씩 오른다는 뜻이다. 성적이 공부 시간이 아니라 공부 시간의 자릿수를 따라 오르는 것처럼 생각하면 된다. 다만 AI는 돈을 넣은 만큼 계단이 거의 예측대로 나온다는 점이 다르다.
둘째, 같은 수준의 AI를 쓰는 값은 12개월마다 약 10분의 1로 떨어진다. 알트먼은 2023년 3월 나온 GPT-4에서 2024년 5월 나온 GPT-4o까지 글자 조각(토큰)당 값이 약 150분의 1이 됐다고 썼다. 반도체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보다 훨씬 가파르다.
셋째, 똑똑함이 한 계단 오를 때 생기는 경제적 가치는 계단보다 훨씬 빠르게 불어난다. 쉽게 말해 한 계단 오르려면 돈이 10배 들지만, 그래도 넣을 가치가 있으니 투자가 멈추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 19개월 뒤, 싸진다는 예측은 맞았다
값이 떨어진다는 관찰은 바깥 자료로도 확인된다. 벤처투자사 a16z는 같은 성능의 AI 값이 해마다 10분의 1로 떨어진다고 분석했고(2024년 11월), AI 연구기관 에포크AI는 성능 구간에 따라 해마다 9분의 1에서 900분의 1까지 떨어졌다고 봤다(2025년 3월).
알트먼이 예고한 ‘AI 에이전트(사람 대신 일을 맡아 처리하는 AI)’도 나왔다. 오픈AI가 2025년 5월 내놓은 코딩 에이전트 코덱스는 2026년 3월 주간 사용자 200만 명을 넘었다. 오픈AI의 연간 환산 매출은 2026년 8월 400억 달러를 넘어, 2025년 말의 약 두 배가 됐다.
- 그런데 비싸진 것들이 있다
AI가 싸지는 동안 AI를 만드는 재료는 모자라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AI용 고성능 메모리 HBM 1위 회사)는 2026년 7월 미국 상장 서류에 “최근 몇 분기 동안 수요가 공급을 넘었다”고 적었다. HBM 시장 점유율은 56.4%(2026년 1분기)다.
전기도 그렇다. 미국 동부 전력망 PJM의 발전 용량 경매 가격은 2027~28년분이 메가와트·하루당 333.44달러로 상한선까지 올라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늘어난 수요 전망은 “거의 전부 데이터센터 때문”이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이 2024년 415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45테라와트시로 늘어 일본 한 나라가 쓰는 만큼이 된다고 본다.
쉽게 말해 AI 한 번 쓰는 값은 내려가는데, AI를 돌리는 칩과 전기는 줄을 서서 사야 하는 물건이 됐다.
- 가장 큰 구매자는 알트먼 자신이다
오픈AI는 2025년 1월 소프트뱅크·오라클과 함께 2029년까지 최대 5,000억 달러를 들이는 데이터센터 계획 ‘스타게이트’를 발표했다. 알트먼은 2025년 11월 앞으로 8년간 약 1조4,000억 달러 규모의 컴퓨팅 약정을 내다본다고 말했다. 오픈AI가 들이는 돈은 곧 칩·전기·땅을 사는 돈이다.
빅테크 4곳(아마존·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메타)의 2026년 설비투자 전망도 7,200억~7,450억 달러로, 2025년의 약 두 배다. 지능을 싸게 만들려는 경쟁이 희소한 재료를 비싸게 만드는 셈이다. 알트먼이 글에 쓴 두 문장이 동시에 맞아 들어가고 있다.
- 지난번 골드러시에도 그랬다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때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금을 캐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서부의 잡화점에 물건을 대는 도매상을 열었고, 1873년에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리벳 작업 바지(나중의 청바지) 특허를 받았다. 금을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곡괭이와 바지가 먼저 팔렸다.
이번이 다른 점도 있다. 스타게이트 7개 부지의 계획 용량은 9기가와트가 넘지만, 2026년 4월 실제로 돌아가는 곳은 텍사스 애빌린 약 0.3기가와트뿐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오픈AI는 2026년 2월 2030년까지의 컴퓨팅 지출 목표를 약 6,000억 달러로 잡았다. 1조4,000억 달러 약정보다 낮은 숫자다. 희소한 재료의 값은 계획이 실제 공사와 주문으로 이어질 때만 오른다.
- 한국 투자자에게는 무슨 뜻인가
2025년 10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스타게이트에 메모리를 대겠다는 의향서를 오픈AI와 맺었고, 업계 보도에 따르면 목표는 최대 월 90만 장의 D램 웨이퍼(반도체를 찍어내는 원판)다. 알트먼의 글에서 한국 증시가 가장 크게 걸린 문장은 ‘지능이 싸진다’가 아니라 ‘한정된 것이 비싸진다’다.
SK하이닉스의 2026년 1분기 매출은 52조5,760억 원으로, 2025년 한 해 매출 97조1,470억 원의 절반이 넘는 돈을 한 분기에 벌었다. 다만 이 숫자는 AI 회사들의 약정이 실제 주문으로 이어진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 비트프레스 인사이트
알트먼의 글은 AGI를 인류에게 주는 선물처럼 쓴다. 2035년에는 누구나 2025년 인류 전체의 지적 능력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모두에게 ‘AI 계산 예산’을 나눠 주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싸진 지능은 소비자가 누린다. 그 선물을 만드는 과정의 돈은 칩·전기·땅처럼 모자란 쪽으로 모인다.
그래서 AGI 시대의 투자 판단은 ‘AI가 무엇을 싸게 만드나’가 아니라 ‘AI를 만들려면 무엇이 모자라나’에서 출발한다. 싸지는 쪽은 경쟁으로 값이 계속 내려가고, 모자라는 쪽은 줄을 선 구매자가 값을 올린다.
다만 그 줄의 맨 앞에 선 오픈AI는 이미 한 번 목표를 낮췄다. 희소한 것의 가치는 기술이 아니라 약정에서 나온다. 모자란 재료에 올라탄 투자자가 봐야 할 것은 AI가 얼마나 똑똑해지느냐가 아니라, 그 약정이 실제 주문서로 바뀌느냐다.
출처
https://blog.samaltman.com/three-observations
https://insideaipolicy.com/ai-wire/altman-offers-ai-observations-public-policy-needs-eve-paris-summit
https://a16z.com/llmflation-llm-inference-cost/
https://epoch.ai/data-insights/llm-inference-price-trends
https://en.wikipedia.org/wiki/OpenAI_Codex_(AI_agent)
https://finance.yahoo.com/technology/ai/articles/openai-revenue-run-rate-tops-224009196.html
https://www.sec.gov/Archives/edgar/data/0002120882/000119312526299963/d32785d424b4.htm
https://www.utilitydive.com/news/pjm-interconnection-capacity-auction-data-center/808264/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ai-will-drive-doubling-of-data-center-energy-demand-by-2030/
https://en.wikipedia.org/wiki/Stargate_LLC
https://techcrunch.com/2025/11/06/sam-altman-says-openai-has-20b-arr-and-about-1-4-trillion-in-data-center-commitments/
https://mlq.ai/news/big-techs-2026-capex-range-reaches-720-billion-to-745-billion/
https://sherwood.news/tech/alphabet-amazon-microsoft-meta-plan-more-than-700-billion-on-capex-this-year/
https://epoch.ai/publications/openai-stargate-where-the-us-sites-stand
https://techstartups.com/2026/02/23/openai-expects-600b-compute-spend-by-2030-as-company-eyes-1-trillion-ipo/
https://www.astutegroup.com/news/general/samsung-and-sk-hynix-to-supply-900000-dram-wafers-monthly-for-openais-500-billion-stargate-project/
https://www.levistrauss.com/levis-history/
용어 풀이
AGI(범용 인공지능) — 특정 한 가지 일이 아니라 사람처럼 여러 분야의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는 AI를 말한다. 정해진 정의는 아직 없다.
토큰 — AI가 글을 읽고 쓸 때 쪼개는 글자 조각으로, AI 사용료를 매기는 단위다.
HBM — AI 칩 옆에 붙여 데이터를 아주 빠르게 주고받는 고성능 메모리다.
스타게이트 — 오픈AI가 소프트뱅크·오라클 등과 함께 미국에 짓는 대형 AI 데이터센터 계획이다.
설비투자 — 회사가 공장·데이터센터·장비처럼 오래 쓰는 시설에 쓰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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