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 가운데 50.8%가 기존 세입자의 재계약이었다. 2023년 27.2%의 두 배 가까운 비중이다. 그런데 재계약 중 계약갱신요구권을 쓴 비율은 지난해 56.7%에서 올해 53.3%로 오히려 줄었다.
전셋값이 오르면 세입자는 보증금 인상을 5% 안으로 묶는 이 권리부터 꺼낼 것 같다. 그래서 권리를 덜 쓴다는 숫자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밀렸다는 뜻으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갱신요구권은 한 번만 쓸 수 있고, 집주인과 합의해 연장하면 쓴 것으로 치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세입자들이 지금은 합의로 연장하고, 그 한 번을 다음 재계약에 남겨 두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갱신요구권은 무엇을 막아 주나
계약갱신요구권(세입자가 연장을 요구하면 집주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게 한 권리)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있다. 한 번만 쓸 수 있고, 쓰면 계약이 2년 늘어난다. 보증금은 기존 금액의 5% 이내에서만 올릴 수 있다.
기존 보증금이 5억 원이면 올릴 수 있는 상한은 2,500만 원이다. 5%는 상한일 뿐 꼭 올려야 하는 비율은 아니다. 집주인이나 그 부모·자녀 같은 직계가족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갱신을 거절할 수 있고, 이때 실거주 의사는 집주인이 증명해야 한다.
눈여겨볼 점은 집주인과 합의해 연장했거나 아무 통보 없이 계약이 이어진 경우(묵시적 갱신)는 권리를 쓴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만 쓸 수 있는 할인 쿠폰처럼 생각하면 된다. 다만 쿠폰과 달리 정해진 할인 폭이 아니라 ‘5%까지만 올린다’는 상한이다.
- 숫자로 보면 얼마나 달라졌나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로 보면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 중 재계약 비중은 50.8%로, 지난해 같은 기간 41.1%보다 9.7%포인트 높다. 같은 기간 전세계약 전체는 25.7% 줄었고, 새로 맺은 계약은 38% 줄었다.
8월 한 달만 보면 흐름이 더 뚜렷하다. 서울시 집계로 8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의 58.9%가 재계약이었고, 그중 갱신요구권을 쓴 비중은 48.7%였다. 지난해 8월에는 57.0%였다. 권리를 쓰지 않고 연장한 계약이 전체 전세 거래의 약 30.2%다.
쉽게 말해 8월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열 건 가운데 세 건은 세입자가 갱신요구권을 쓰지 않고 연장한 계약이다.
- 세입자는 왜 지금 권리를 쓰지 않을까
배경은 오르는 전셋값과 줄어드는 매물이다. 한국부동산원 기준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7.35% 올라 2011년 이후 가장 큰 폭이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10월 6일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 9,743건으로 1년 전보다 18.2% 줄었다.
이런 시장에서 권리를 지금 쓰면 2년 뒤에는 남은 방패가 없다. 그때는 집주인과 새 조건으로 다시 협의해야 해 5%를 넘는 인상도 가능하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교수는 갱신요구권 사용 비중이 낮아진 것을 두고 “세입자들이 권리를 포기했다기보다 임대인과 협의해 계약을 연장하면서 향후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남겨두려는 것”이라고 봤다.
- 5억 원 전세라면 어느 쪽이 덜 낼까
보증금 5억 원에 사는 세입자를 가정해 보자. 지금 권리를 쓰면 5%인 2,500만 원을 올려 5억 2,500만 원이 된다. 대신 집주인과 7% 인상에 합의하고(합의 인상률은 가정) 권리를 남기면 3,500만 원을 올려 5억 3,500만 원이 된다. 당장은 1,000만 원을 더 내는 셈이다.
2년 뒤 집주인이 10% 인상을 요구한다고 하자. 권리를 이미 쓴 세입자는 5,250만 원을 올려 5억 7,750만 원이 된다. 권리를 남긴 세입자는 그때 권리를 써 2,675만 원만 올려 5억 6,175만 원이 된다. 4년을 합치면 아껴 둔 쪽이 1,575만 원 덜 올려 준다(가정 계산).
반대로 2년 뒤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리지 않으면 먼저 권리를 쓴 쪽이 1,000만 원 덜 낸다.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아껴 둔 권리로도 갱신을 요구하기 어렵다. 쉽게 말해 권리를 아끼는 것은 2년 뒤 전셋값이 더 오른다는 쪽에 거는 선택이다.
- 세입자가 눌러앉으면 누가 부담을 떠안나
전문가들은 이런 주거 이동 위축이 매물 부족을 더 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전셋값 상승 → 세입자가 이사 대신 재계약 → 시장에 새로 나오는 전셋집 감소 → 다시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고리다.
이 고리의 끝에는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이 선다. 결혼이나 이직으로 처음 전셋집을 찾는 사람은 아낄 권리도, 눌러앉을 집도 없다. 재계약이 늘수록 이들이 고를 수 있는 매물은 줄어든다.
- 비트프레스 인사이트
갱신요구권 사용 비중이 줄었다는 숫자는 세입자가 권리를 잃었다는 뜻이 아니다. 합의로 연장하면 권리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지금은 합의로 연장하고 다음 재계약에 쓸 방패를 남겨 두는 세입자가 늘었다는 해석에 가깝다.
합의 인상률이 5%를 넘는다면 이 선택이 이득인지는 2년 뒤 전셋값과 집주인의 실거주 여부에 달려 있다. 5억 원 전세에 7% 합의를 가정하면 2년 뒤 10% 인상 땐 1,575만 원을 덜 내지만, 인상이 없으면 1,000만 원을 더 낸 셈이 된다.
재계약에서 따질 것은 ‘이번에 5%를 넘게 올려 주나’가 아니라 ‘지금 더 내는 돈이 2년 뒤 권리 없이 재계약할 때 더 낼 수 있는 돈보다 작은가’다.
출처
https://m.sedaily.com/article/20096269
https://www.cal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965
https://www.segye.com/newsView/20261006500913
https://casenote.kr/%EB%B2%95%EB%A0%B9/%EC%A3%BC%ED%83%9D%EC%9E%84%EB%8C%80%EC%B0%A8%EB%B3%B4%ED%98%B8%EB%B2%95/%EC%A0%9C6%EC%A1%B0%EC%9D%983
https://casenote.kr/%EB%B2%95%EB%A0%B9/%EC%A3%BC%ED%83%9D%EC%9E%84%EB%8C%80%EC%B0%A8%EB%B3%B4%ED%98%B8%EB%B2%95/%EC%A0%9C7%EC%A1%B0
용어 풀이
계약갱신요구권 — 세입자가 한 번에 한해 계약을 2년 더 연장하자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이때 보증금 인상은 5% 이내로 묶인다.
갱신계약 — 새 세입자를 들이지 않고 기존 세입자와 다시 맺은 전월세 계약이다.
묵시적 갱신 — 계약이 끝나기 전 정해진 기간에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아무 통보를 하지 않아 같은 조건으로 계약이 이어진 경우다.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 국토교통부가 신고된 부동산 매매·전월세 거래 가격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아실 — 아파트 실거래가와 매물 수 등을 모아 보여 주는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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