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8시 15분, 정규장이 열리기 전 거래(프리마켓)에서 SK하이닉스는 전날보다 7.47% 내린 값에 거래됐다. 몇 시간 전 미국 AI 회사 앤트로픽(오픈AI 출신들이 세운 AI 챗봇 회사)의 상장 전 투자자 행사에선 3분기 매출이 168억 달러로 한 분기 만에 45% 늘었다는 말이 나왔다.
흔한 해석은 ‘미국 물가 충격에 반도체가 같이 빠졌다’다. AI 회사 매출이 크게 늘면 메모리 회사엔 좋은 소식이어야 하니, 앤트로픽은 상관없어 보인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시장은 앤트로픽 매출이 ‘얼마나 늘었나’보다 ‘기대만큼 칩 살 돈을 버나’를 봤다. 그 돈이 데이터센터 칩 주문이 되고, 칩에 붙는 메모리가 SK하이닉스 실적이 되기 때문이다.
- 앤트로픽은 무엇을 밝혔나
앤트로픽은 14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상장 전 투자자 행사를 열었다. 참석한 투자자에 따르면 3분기 매출은 168억 달러로 2분기 116억 달러보다 45% 늘었고, 1분기는 47억 달러였다. 3분기에는 조정 기준(회사가 일부 비용을 빼고 따로 계산한 기준)으로 흑자를 냈다.
1분기 47억 → 2분기 116억 → 3분기 168억 달러. 두 분기 만에 3.5배가 넘었다. 앤트로픽은 기업가치 2조 달러 이상을 목표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고, 상장은 11월 미국 중간선거 뒤가 될 가능성이 크다.
- 45%나 늘었는데 왜 실망이 됐나
시장은 앤트로픽의 연환산 매출(지금 버는 속도로 1년을 벌면 얼마인지 계산한 값)이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해 왔다. 3분기 매출 168억 달러에 4를 곱하면 672억 달러다. 이건 석 달 평균 속도라, 분기 말 속도는 이보다 높을 수 있다.
하나증권 강재구 연구원은 연말 연환산 매출을 1,000억 달러로 잡으면 7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매달 약 9%씩 커져야 한다고 계산했다. 하나증권 계산으로는 연말 1,000억 달러가 되려면 9월에 이미 약 772억 달러여야 하는데, 3분기 평균을 4배 환산한 값은 672억 달러다. 그는 성장세는 여전히 높지만 기업가치를 정당화하려면 성장률 유지와 수익성 개선이 중요해질 것으로 봤다.
쉽게 말해 성적은 크게 올랐지만 시장이 미리 매긴 목표 점수엔 못 미쳤다. 연봉 1억 원을 받을 거라 보고 대출 한도를 잡아 둔 사람의 연봉이 크게 올랐지만 1억 원엔 못 미친 것과 비슷하다. 월급은 올랐어도 은행은 갚을 힘을 다시 따진다. 다만 앤트로픽은 조정 기준으로나마 흑자를 냈다는 점이 다르다.
- 앤트로픽 매출은 어떻게 SK하이닉스 실적이 되나
앤트로픽은 앞으로 10년 동안 클라우드·컴퓨팅·인프라에 최소 5,180억 달러를 쓰기로 약정해 두었다. 구글과 아마존은 앤트로픽의 투자자이면서 컴퓨팅 자원을 빌려주는 공급자다.
그 데이터센터를 채우는 것이 구글 TPU(구글이 브로드컴과 함께 만든 AI 전용 칩) 같은 AI 칩이다. TPU 하나에는 HBM(D램을 여러 층 쌓아 AI 칩 옆에 붙이는 고성능 메모리)이 6~8개 들어간다. 한국투자증권은 2025년 구글 TPU에 들어간 HBM의 56.6%를 SK하이닉스가 공급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마존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서 HBM을 받는다.
돈이 흐르는 길은 이렇다. 앤트로픽이 번다 → 구글·아마존에 컴퓨팅 이용료를 낸다 → 구글·아마존이 AI 칩을 산다 → 칩에 붙는 HBM이 SK하이닉스 매출이 된다. 앤트로픽이 SK하이닉스에서 직접 메모리를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 사슬을 따라 읽기 때문에, 앤트로픽 매출이 기대보다 작으면 사슬 끝 메모리 회사의 앞날 주문까지 낮춰 잡는다.
- 미국 물가 충격은 얼마나 거들었나
앤트로픽만의 탓은 아니다. 14일 발표된 미국 9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7% 올라 시장 예상 3.6%와 8월 3.4%를 웃돌았다. 미국 중앙은행(연준)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커지자 기술주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
그날 나스닥은 1.88%,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30% 내렸다. 미국에서 거래되는 SK하이닉스 주식(ADR)도 정규장에서 6.06% 빠졌다. AI 데이터센터 회사 코어위브의 신용 위험이 부각됐고,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2026~2030년 AI 인프라 투자는 약 7조 달러인데 데이터센터에서 나올 AI 매출은 3조 6,000억 달러 이하일 것으로 추정했다는 경고도 겹쳤다.
앤트로픽 소식은 미국 장이 끝난 뒤 나왔다. 실적이 장 마감 후 보도되자 SK하이닉스 ADR은 시간외 거래에서 3.66% 더 내렸다. 물가 충격 뒤에 앤트로픽 실적이 겹친 셈이다. 국내 정규장이 열리자 코스피엔 매도 사이드카(선물 가격이 급락할 때 프로그램 매도를 5분간 멈추는 장치)가 걸렸고, 개장 초 SK하이닉스는 8.95% 내린 채 거래됐다.
- 비트프레스 인사이트
AI 회사 실적이 메모리 주가를 움직이는 건 시장이 그 매출을 칩을 살 예산으로 읽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 예산을 미리 크게 잡아 주가에 넣어 왔다. 그래서 매출이 45% 늘어도 기대한 1,000억 달러 속도에 못 미치면, 메모리 주가는 ‘늘었다’보다 ‘모자랐다’에 반응한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를 가진 사람에겐 이 차이가 하루 손익으로 온다. SK하이닉스를 1,000만 원어치 들고 있었다면 장 전 7.47% 하락만으로 평가액이 약 75만 원 줄어든 셈이다(가정 계산).
AI 회사 실적 뉴스는 ‘몇 % 늘었나’보다 ‘시장이 기대한 숫자보다 위인가 아래인가’로 읽는다. 성장률이 아무리 커도 기대치 아래면 메모리 주식에는 나쁜 소식일 수 있다.
출처
https://www.investing.com/news/stock-market-news/anthropics-q3-revenue-surges-45-to-nearly-17-billion-4950208
https://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676
https://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684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61015000116
https://biz.sbs.co.kr/amp/article/20000275475
https://www.ajunews.com/view/20251130160247763
용어 풀이
프리마켓 — 정규장이 열리기 전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에서 열리는 주식 거래 시간이다.
연환산 매출 — 지금 버는 속도가 1년 내내 이어진다고 보고 계산한 1년치 매출이다.
조정 기준 흑자 — 회사가 일부 비용을 빼고 따로 계산한 기준으로 이익을 냈다는 뜻으로, 회계 기준 이익과 다를 수 있다.
HBM(고대역폭메모리) — D램을 여러 층 쌓아 AI 칩 바로 옆에 붙여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게 한 고성능 메모리다.
ADR — 외국 회사 주식을 미국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게 만든 증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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